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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절벽과 바다 사이 44㎞ 비경…‘주라기 공원’ 속으로 씽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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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4-09 14:09:16 조회수 265


포항에서 출발한 선플라워호가 정박한 도동항. [연합뉴스]

국토 최동단 울릉도가 가까워졌다. 연락선을 타고 12시간 걸리던 울릉도 뱃길이 2시간 반(묵호 출발 쾌속선)까지 줄어들었다. 2025년엔 70인승 경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 완공된다. 지금은 포항·강릉·묵호·후포 네 군데서 출발하는 여객선의 도착지가 다르지만 통합여객선터미널(사동항)이 완공되면 한 군데로 모인다. 독도 가서 태극기 한번 흔들고 오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져 울릉도는 활기가 넘친다.

 

지난 3월에는 울릉도의 숙원사업이 이뤄졌다. 울릉도 해안선 일주도로가 완공된 것이다.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안이 제3공화국 각료회의에서 통과된 게 1963년 3월이니 무려 56년 만이다. 섬 동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해안길(내수전∼섬목)은 워낙 좁고 험했다. 그 구간에 터널을 뚫는 공사가 끝나 깎아지른 절벽과 검푸른 바다 사이를 가르며 천혜의 절경을 맛볼 수 있는 하이킹 코스가 생겼다.

 

땅값 올라 평당 5000만원 넘는 곳도

 

2016년 4월, 제주도 해안 자전거도로(약 240㎞)를 완주하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번에는 울릉도 도전에 나섰다. 총 길이는 44.2㎞로 제주도의 1/5 정도지만 업다운이 심한 언덕 구간이 많아 무척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기계의 힘을 좀 빌리기로 했다. 국내 최대 전기자전거 메이커인 EME코리아(회장 김홍식)에 부탁했다. 이 업체에서 수입·공급하는 프랑스제 배터리 충전식 자전거를 빌렸다.

 

전기자전거로 울릉도 일주를 한 정영재 기자. 정영재 기자

10월 9일 오전 9시 50분.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선플라워호에 자전거를 실은 뒤 객실로 올라갔다. 파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배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승선 전에 멀미약을 먹었지만 뱃멀미를 호소하며 드러눕는 사람이 속출했다. 객실에 누워 있으면 좀 낫기 때문이다. 3시간 30분 항해 끝에 도동항에 도착했다. 해 지기 전에 완주하려면 점심을 건너뛰어야 했다.

 

전기자전거는 전원을 켜지 않으면 일반 자전거와 똑같다. 애초엔 가장 힘든 언덕 구간에서만 모터가 밀어주는 힘을 빌리려고 했다. 그러나 도동항에서 울릉군청 쪽으로 올라가는 언덕에서부터 전원을 켜야만 했다. 배터리만 3kg이 넘는 전기자전거는 무거웠고, 등에 멘 배낭 무게도 만만찮았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불쑥 나타난 삼선암. 정영재 기자

힘겹게 언덕을 올라선 뒤 내리막을 시원스럽게 달렸다. 저동항을 지나 최근에 완공한 내수전터널과 와달리터널을 통과했다. 이 두 터널을 뚫는 데만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죽도와 관음도를 오른쪽에 두고 달리던 중 불쑥 나타난 삼선암(三仙巖)은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영화 ‘주라기 공원’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북쪽 해안은 일주도로 2기 공사 구간이 많았다. 공사 중인 곳은 한 개 차선으로 마주 오는 차량과 교행해야 했다. 대형 버스가 앞에 나타났다. 교행이 힘들 것 같아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돌에 걸려 넘어졌다. 버스가 정지해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사고를 당할 뻔했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발했는데 헛바퀴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체인이 빠져 있었다. 체인을 맞춘 뒤 다시 달렸다. 송곳봉을 지나자 고갯길이 시작됐다. 전기 기어를 최고(5단)에 놓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전기가 밀어주는 힘과 내 다리 힘을 합쳐 고갯길을 거뜬히 넘었다.

 

통구미마을 앞 거북바위에서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정영재 기자

두 번 더 언덕을 넘어선 뒤 서쪽 해안을 기분 좋게 달리는데 ‘방전’ 메시지가 계속 떴다. 100% 충전하면 80㎞는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워낙 가파른 고갯길들을 넘다 보니 전력 소모가 심했다. 통구미터널을 지나 거북바위 앞 가게에 들러 20분 정도 충전을 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사동항을 지나 울릉터널로 올라가는 깔딱고개에서 전기자전거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자전거를 끌고 30분 이상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출발점인 도동항에 도착했을 땐 어둠이 깔려 있었고, 5시간 사투에 시달린 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내리막을 빼고는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안 밟은 적이 없었다.

 

다음날 오전, 단체 관광객 틈에 끼어 버스 투어를 했다. 25인승 버스는 어제 내가 안간힘을 다해 달려온 코스를 거꾸로 되짚어갔다. 기사 겸 가이드 최진구씨의 친절한 설명으로 울릉도의 어제와 오늘을 알게 됐다. 울릉도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조선시대엔 소개령이 내려 무인도로 지낸 적도 있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같은 화산섬이다. 제주도가 완만하다면 울릉도는 가파르고 더 원시적이다. 평지가 거의 없어 깎아지른 비탈에 밭농사를 짓고, 오징어를 잡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70년대 인구가 3만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1만명이고, 70세 이상 고령자가 많다. 배편이 늘어나면서 관광객 증가세가 가팔라져 올해만 40만명을 넘을 거라고 한다. 지난해 울릉도 평균 땅값(공시지가 기준)은 전년보다 13.7% 올랐다. 도동항 쪽에는 3.3㎡(1평)당 5000만원 넘는 건물도 있다고 한다.

 

울릉도는 겨울에 폭설이 내리고 바람이 강해 웬만한 과목은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땅에 납작 엎드린 나물을 많이 재배한다. 울릉도 명물이 된 명이나물 외에도 부지깽이·삼나물·고비·섬더덕 등이 있다. 호박을 많이 키우고 호박엿이 유명해진 것도 그 이유다. 울릉산채영농조합이 운영하는 호박엿 공장 입구에는 큼지막한 호박 수백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호박을 가공해 엿·젤리·빵·잼 등을 만든다.

 

울릉도 한 바퀴

이젠 ‘울릉도=오징어’가 아니다. 기후 변화, 인구 감소, 중국 어선 등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매년 100톤 이상 잡히던 오징어가 올해는 5톤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한다. 주민 절반 이상은 관광업에 종사한다.

 

2025년에 완공되는 울릉공항은 관광객 편의뿐만 아니라 울릉도 주민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김명호 울릉군청 공보팀장은 “응급환자가 수송 도중 배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육지에서 상(喪)이 나거나 대학 입시를 치를 때 주민의 고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악천후로 배가 못 뜨면 며칠간 발을 동동 구르는 관광객도 많았다. 공항은 울릉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줄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난개발로 인한 쓰레기·범죄 등으로 몸살을 앓는 제주도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김명호 팀장은 “우리 군정 목표가 ‘꿈이 있는 친환경 섬’이다. 깨끗하고 살기좋은 섬을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김병수 군수님을 중심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며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울릉도에 다시 올 것이다. 그때는 페달을 밟으면 전력이 발생하는 자가충전형 전기자전거나 전기 MTB(산악자전거)를 갖고 올 생각이다. 다리 힘을 키워 일반 MTB로 섬 일주에 도전할 마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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